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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덕궁의 가을 3// 단청이 아름다운 희정당과 선정전의 청기와~

by 신록둥이 2010. 11. 13.

 

 

 

 

[창덕궁 선정전과 희정당,성정각]

 

숙장문을 들어서면 나무들에 가려 한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왼쪽으로 선정문, 희정당, 성정문이 차례로 있다.

 

선정문을 들어서면 청기와 전각인 선정전이 있는데 광해군이

인정전과 선정전을 청기와로 하려다 사치한 궁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사관의 비판을 받았다는 '실록'의 기록도 있다.

 

단청이 아름다운 희정당은 왕의 업무공간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안쪽의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침전공간이였다.

 

희정당 옆에는 궁중의료기관으로 이용하던 성정각이 있다.

이 내의원에는 의녀도 있었는데 이들은 남자의관에게 진찰받기 어려운 궁중

여성들의 치료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사진출사이고 단체로 다니다보니

 내부까지 자세히 보여드리지 못해 많이 아쉽다.

 

 

 

 

 

 

 

 

출사 인원이 많아

고궁 내방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선정문 뒤의 선정전]

왕이 나랏일을 하던 곳으로 선정이란 정치를 베푼다는 뜻이다.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희정당]

희정당은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건물을 지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수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어 이를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희정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에 탄 것을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1920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이때 일부가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희정문의 단청이 참 아름답다.

 

 

 

 

 

 

 

[성정각 (내의원(內醫院))]

현판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보이는문이 성정문이다.

성정각의 보춘정이 보인다. 

성정각은 세자가 서연(書筵 : 학자들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던 곳이다.

원래 내의원은 인정전 서쪽에 있었는데 1910년 대부터 성정각을 내의원으로 이용하였다.

내의원은 궁중의료기관으로 왕과 왕족의 병을 치료하고 약을 조제하던

곳으로 내국(內局)이라고도 불렀다.

 

 

 

 

 

▶창덕궁에서 승하한 마지막 왕 순종(1874~1926)

조선 제27대 왕(1907~10 재위).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재위기간 동안 통치권을 통감부에 빼앗기고,

일제의 강요로 한일신협약·기유각서·한일합병조약 등을 체결했다.


1874년(고종11년) 2월 고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7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동생인 영친왕(英親王)을 황태자로 책립했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대한제국이 무너지게 되자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 1926년 승하하였다.

                  순종의 장례 때 6·10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능은 유릉(裕陵)이다.                  

                                                                                                                                                                                 *도움말[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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