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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덕궁의 가을 4// 낙선재와 마지막 황실 가족 이야기~

by 신록둥이 2010. 11. 14.

 

 

*낙선재에서 생활했던 마지막 황실 가족 이야기*

 

▶순정효황후 윤비

순정효황후 윤비는 순종황제의 비다.

서른 셋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그녀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중전다운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옥새를 감춰 두고 내놓지 않은 일이며, 한국전쟁 때 낙선재로 쳐들어온 인민군들에게 “이곳은 나라의 어머니가 사는 곳이다” 라며

호통쳐서 내쫓은 일, 왕조가 무너지고 순종이 승하한 뒤에도 일제에 항거하며 낙선재를 지켜낸 그 당당한 기품 등.....

또한 공산치하에서 어느 누구 하나 황후라고 돌보아주는 이 없는 혹독한 가난과 고독한 피난살이에서도 황후로서의 자존심을 저 버리지 않고

끝내 낙선재를 되찾아 흩어진 왕족들을 기다리던 윤황후였다.

 

그녀는 왕조의 운명과 함께 침잠하는 자신의 운명을 불교에 의탁하기도 하였다.

한때 그녀는 성북동 흥천사 가까운 곳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그 절을 매일 찾아가 왕가의 며느리로서 왕조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를 했다.

흥천사에서의 기도 덕분이었는지 그녀는 이승만 정부와의 끈질기고도 외로운 싸움 끝에

끝내 창덕궁 낙선재를 도로 찾아 일본에 있던 영친왕 내외와 덕혜옹주를 불러들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미약하나마 자신의 몫을 다하려 했던 조선의 마지막황후 순정효황후는 1966년 낙선재 석복헌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고 만다.

 

 

▶영왕

영왕 이은(李垠)은 1897년 생으로 고종의 3남이며 순종의 동생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로서 11세에 일본에 볼모로 끌려간 후, 1920년 일제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강제로 일본 황족의 딸(이방자 여사)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영왕의 귀국은 광복이 되었어도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1963년 12월에야 가능하게 되었으나 이미 말을 못하고 게다가 기억상실의 상태였다.

그 후 7년간 병원치료도 헛되이 1970년 낙선재에서 눈을 감았다.

 

 

▶영왕비 (이방자 1901-1989)

일본 동경 출생. 황족의 장녀로 태어나 1918년 학습원을 졸업하고, 20년 당시 일본에 인질로 가 있던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과 결혼하였다.

이 두 사람의 결합은 조선과 일본의 융합이란 차원에서 계획된 경략결혼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후, 1947년에 지정된 신헌법에 의하여 왕족신분을 상실한 두 사람은 무국적 상태로 있다가

63년 한국적( 韓國籍)을 취득하여 귀국하였다.

1970년 남편 이은 과 사별한 후 한국에 남아 부군의 뜻을 이어 신체장애자를 위한 〈명휘원(明暉園)>과 정신지체아를 위한

<자혜학교(慈惠學敎)>를 세워 사회복지활동을 하였다.



▶이구 (李玖; 1931- 2005)

영왕과 이방자여사의 2남으로 태어난 이구씨는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으로서

일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단독으로 도미(渡美)하여 MIT공대를 졸업하였다.

직장동료였던 줄리엣여사와 결혼하였으나 한국에 돌아온 후 왕실의 품위를 그르쳤다는 질타 속에 파탄을 맞게 되었다.

이방자여사가 돌아가신 후 한국을 떠낫다가 1996년 영구 귀국하여 부암동에 거처를 정하기도 하였으며

2005. 7. 16 일본에서 사망 하였다.

 

▶덕혜옹주(1912-1989)

덕혜옹주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녀이다.

고종이 나이 환갑에 귀인 양씨로부터 얻은 외동딸로서 왕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지냈다.

그러나 1925년 12세에 동경유학을 빌미로 일본으로 끌려갔고 17세가 되던 1929년 어머니마져 돌아가시게 되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병을 얻게 되었다.

병세가 호전되던 20세에 대마도주(對馬島主)의 아들과 강제로 결혼하고, 결혼생활 3년만에 그동안의 시련으로 심한 우울증에 실어증까지 겹쳤다.

폐인이 된 몸으로 1962년에 환국하여 낙선재에서 1989년 운명하기까지 끝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낙선재 지역]

낙선재는 헌종임금의 서재 겸 사랑채였으며 단청하지 않은 소박한 곳으로 1996년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왼쪽부터 차례로 낙선재,석복헌,수강재가 있다.

소박한 한옥의 멋스러움이 있는 이곳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들인 순종효황후와 영왕, 영왕비(이방자), 왕세손(이구),

덕혜옹주가 거처로 사용했던 곳이다. 

 

 

 

 

 

[상량정]

『궁궐지』와 『동궐도형』에 “육모 정자로 평원루이다.[六隅亭 平遠樓]”라고 되어 있으므로

본래 이름이 평원루였음을 알 수 있다.

순종 이후에 이름을 바꾼 듯하다.
‘상량(上凉)’이란 ‘시원한 곳에 오른다’는 뜻이다.

이 정자의 위치가 높은 지대에 시원스럽게 앉아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낙선재]

이곳에서 기울어진 국운를 지켜보며 암울한 마음으로

쓸쓸히 살아갔을 마지막 왕족들..... 

 

왕세손(이구)이 거쳐했던 곳이라 일본에서 사망했지만 이 곳에 빈소가 차려 졌었다.

 

 

 

 

 

 

 

 

 

 

 

 

 

 

 

 

 

 

상량정을 열심히 담고 있는 우리 출사회원님들~

 

 

 

 

 

보이는 곳 오른쪽이 창경궁 들어가는 곳이고 왼쪽 사람 많은 곳이 후원 들어 가는 곳이다.

각자 들어가는 시간이 있어서 가다리고 있다.

후원은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라 기대가 많이 된다.

 

*도움말:창덕궁자료실

*관람안내:02-762-9513

*WWW.cd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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