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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탑골공원/국보제2호와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민족해방운동의 발상지

by 신록둥이 2011. 5. 7.

 

 

     

      3,1운동의 점화지 탑골공원을 찾아서~

 

      이곳이 한동안 갈 곳 없는 노숙자와 노인들의 휴식처로 자리 매김 되면서       . 

      우리민족의 독립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인데도 그동안 기피공원으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본 탑골공원은 예전 노인들로 가득했던 공원이 아니었다.

      요즘 노인들은 이 탑골 공원보다는 찻집이나 카페, 심지어는 페스트푸드점 등에서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렇게 경제력있는 노인들이 늘어가면서 좀 더 나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십여년 전인가? 동생이 낙원상가에 악기 구입 할 일이 있어 따라왔다가

서문을 지나며 본 공원풍경에 정말 놀랐었다.

 

그렇게 넓어 보이지 않은 공원에 온 통 노인들로 가득,

그래서 이 공원은 노인들만의 전용 공원인 줄 알았다.

 

이렇게 삼일운동의 발상지인 줄은 모르고.....

 

 

 

 

 

 

 

 

 

 

 

이 삼일문을 처음 들어가 본다.

 

1888년에 개원한 인천의 만국공원(인천 자유공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이고,

탑골공원은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공원의 개원연도도 1895년이나 1896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3.1운동 기념탑'

 

노숙자도 휴식을 즐기는 노인분들도 여전히 좀 있지만 그래도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들어오는 젊은 사람들도 눈에 띄어서 참 뿌듯하다.

 

 

'독립선언문'

 

공약3장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도 보인다.

 

 

 

'손병희선생 동상'

 

동학.천도교 지도자, 독립둔동가, 호는 의암, 본관은 밀양, 충청북도 청주출신이시다. 

 

1906년 동학을 천교도로 개칭하고 제3대 대도주에 취임하여

교세확장 운동을 벌이는 한편 출판사 보성사를 창립하고, 보성, 동덕 등의 학교를 인수하여 교육사업을 하였다.

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여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3,1운동 기념 부조

[이 두장의 사진은 다음검색에서 펌 한 것이다.]

 

 

 

 

 

 

 

예전에는 비둘기도 참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저렇게 간간히 눈에 띄는 정도다.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

 

원각사는 조선 세조 10년(1464)에 창건되었는데, 이 비석은 성종 2년(1471)에 세워졌다.

 

이 원각사비는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았다.

보주(寶珠)를 받든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한 둥근 이수 부분이 비 몸돌과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다.

비 몸돌 윗 부분을 용이 감싸듯 표현되는 복고적인 형식을 띠고 있다.


돌거북은 다소 둔중한 몸체를 하고 있으며,

돌거북의 머리는 목을 따로 표현하지 않고 수평으로 돌출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다소 번잡하고 사실적인 표현에서 미숙한 면도 지니고 있지만 조선시대 비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조가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원각경(圓覺經)》을 간행한 것과,

회암사(檜巖寺) 사리탑에서 사리를 나누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원각사를 짓고

 13층 사리탑을 세우게 되었으니, 그 전말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비석이다.

 

 

 

 

 

 

 

 

 

 

 

 

 

'팔각정'

 

1919년 3월1일, 4,5천명의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12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이곳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여기서 시작된 만세 시위는 전국으로 펴져나갔다.

 

 

 

 

 

 

'원각사지10층석탑(국보제2호).

 

국보제1호는 숭례문이고

이 원각사지10층석탑이 국보제2호이다.

 

이 탑은 세조가 세운 원각사터에 남아 있는 높이12m의 십층석탑이다.

기단부는 3층으로 아(亞)자형이며, 탑신부는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평면이고 4층부터는 방형의 형태를 취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원각사의 창건 동기를 살펴보면

원각사 창건의 의도가 사리봉안에 있음이 강조되고 있어

당시 탑의 건립이 특히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십층석탑(국보제86호)과 여러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이곳도 봄이 완연하고 이제 곧 녹음이 짙게 드리울 것이다.

 

 

 

 

 

이 탑골공원은 국보제2호가 자리한 곳이며

홍인지문, 보신각 동종에 이어 보물제3호인 원각사비가 있고 3.1운동의 발생지이기도 한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있는 의미 깊은 곳이다.

 

노인들 뿐 아니라  젊음의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사색의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문으로 나오자 이 길은 또 타로점과 사주와 궁합을 봐주는 거리로 자리잡았다.

젊은 연인들이 사랑의 궁합을 보며 가끔 들리지 않나 싶다.

 

나도 인사동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도움말출처:다음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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