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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중국

장사/중국 고대4대서원 중 하나였던 '악록서원(岳麓書院)'

by 신록둥이 2011. 5. 16.

 

 

     '악록서원(岳麓書院)'


     기원976년에 세워진 중국 후난성의 악록서원은 중국 고대의 4대 서원 중에 으뜸이며

     세계 최고의 고등학부의 하나였다.

      악록서원이 대륙에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유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가

     이곳에서 강의하면서 부터이다.

 

      이 서원에서는 1천년 동안에 걸쳐 중국의 유명인물인 쟝스(張,栻), 왕후즈(王夫之), 웨이윈(魏源),

     청구어환(曾國藩), 차이어(蔡鍔), 양치초(梁啓超), 마오쩌동(毛澤東)등이 배출되었다. 

 

 

 

 

 

 

 

대학가로 접어들면서 버스안에서 담은 사진인데

후난대 캠퍼스와 멀리 야트막한 악록산(297m)도 보인다.

 

 

대학입구에 모택동동상이 웅장하게 서 있다. 

후난성 출신인 모택동은 이 곳 악록서원에서 수학했다.

 

 

 

'서원입구 건물'

 

 

 

'천년학부(千年學府)'

 

매표소가 있는 원문 출입구에는 천년학부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혁희대(赫曦臺)'

 

 

 

 

 

    

     악록서원은 장사시 악록산의 청풍협(淸風峽)아래에 산세에 따라 건축되었으며

     점유면적이 2만 1천㎢이다.

 

     대칭되는 형식으로 지어졌으며 증축선에는 원문(院門), 혁희대(赫曦臺), 대문(大門), 이문(二門), 강당(講堂),

     어서루(御書樓)가 있으며 양측에는 교학재(敎學齎), 반학재(半學齎), 상수교경당(湘水敎京堂), 백천헌(百泉軒),

    선산사(船山寺), 숭도사(崇道祠), 육군자당(六君子堂), 삼암(杉庵), 염계사(廉溪祠), 사잠정(四箴亭)등이 있다.

 

    들어가면서 오른쪽에는 문묘와 대성전이, 왼쪽 화초원림에는

    두 정자(풍운정, 취향정)와 두 연못(음마지, 황문지) 등 정취를 자아내는 곳이 있다.

 

    우리는 '강당'에서 '화초원림'지역 정자와 연못을 거쳐 '어서루'주변을 돌아 나와서

    옆의 '문묘'쪽은 시간이 없어서 살짝 사진만 담고 나왔다.

 

 

'혁희대를 뒤로 돌아 본 모습'

 

 

 

'악록서원(麓書院)  대문'

 

 대문 현판아래 양 옆으로는 '유초유재'(惟楚有材)와 '어사위성'(於斯爲盛)는

초나라 자제들이 번성한다는 문귀들이다. 

 

 이곳은 악록서원(麓書院)인데 대문 현판에는  

악록서원(麓書院)이라고 '악(岳)' 자를 다르게  '악(嶽)'로 표기해 놓았다. 

 감옥()에 들어간 것처럼 악록산()에서 학업에만 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단다.


 

'이문(二門)'

 

 

 

 

'강당(講堂)'

 

二門을 들어서면 이렇게 강당 건물이다.

 

二門을 들어서서 뒤돌아 보면 멀리 혁희대가 보이는데 그 뒤에 원문이 또 있다.

 

대문의 악록서원(麓書院)의 악(嶽)자를 쓴 의미를 이 겹겹의 문들이 대변해 주는 듯하다.

 

 

 

'강당(講堂)'

단층 건물인 강당에 들어서면 중앙에 나무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하나에는 주자가 앉고

다른 하나에는 악록서원 원장인 호남학파 거두 장식(張撚)이 앉아

 유명한 ‘주장회강(朱張會講)’이라는 세미나를 주재했던 현장을 보존하고 있다.

 

 

 

현판의 '실사구시(實事求是)'문귀는

사실을 토대로 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중국 청대(淸代)

고증학(考證學)의 학문방법론이다.

 

우리나라 조선 후기에 이용후생을 실천하고 실사구시를 연구하던

 실학파(정약용,박지원,김정희등)학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좌측의 '학달성천'은 강희제(청나라 제4대황제)가 내린 편액으로

'배움으로 하늘의 성품에 이르다'란 문귀다.



 

 

강당 안 좌우 벽면에는 성리학의 완성자이자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

 주희(朱熹)의 친필인 '충忠, 염廉, 절節, 효孝'을 큼지막하게 한 글자씩 새겨 놓았다.

 

 

 

 

 

 

 

연못과 정자가 있는 화초원림지역 중 연못이 있는 한 곳인 듯 하다.

 

전체를 다 둘러 보질 못해서....

 

 

 

 

 

 특이한 이 나무 아래 앉아 

공부하다 지친 유생들이 머리를 식혔을것을 짐작해 본다.

  

 

 

 

대숲과 연못, 자연이 아우러진 멋진 정취를 자아내는 곳이다.

유생들이 이 곳 화초원림에 들어오면 계속 머물고 싶어 질 것 같다. 

 

 

 

 

 

저 벽들에는 문귀들이 쭉 걸려 있는데

이곳을 거닐며 읊으면 저절로 머리속으로 쏙쏙 들어가지 않았을까?

 

 

 

 

 

 

 

 

 

 

 

 

 

 

 

 

 

 

 

'어서루(御書樓)'

 

강당 공간 뒤는 정원을 겸한 제법 큰 마당을 전면으로 내려다 보는 어서루(御書樓)라는

거대한 3층 목조 기와 건축물이 나타난다.

 

임금이 내린 책을 보관하는 장소라는 뜻인데,

현재 이곳에는 고서는 없고 최근에 발간된 사고전서(四庫全書)와 같은

근현대 출판물이 서가에 빼곡히 꽂혀있단다.

 

 


'어서루앞의 정원을 겸한 마당'

 

 

 

'숭도사(崇道祠)와 육군자당(六君子堂)'

 

 

 

 

이곳은 중심축을 이루는 악록서원구역의 오른쪽에 있는 

공자의 제사공간인 '문묘(文廟)'와 '대성전(大聖殿)' 구역이다. 

 

이 곳은 나만 살짝 들어가서 사진을 담아 나왔다.

 

 

'공자행교상'

 

'공자는 유교의 시조(始祖)'이다.

공자의 '인의지예(仁義禮智)'의 도를 교리화한 성리학은 유교에 뿌리을 두고 있다.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런

고대 진리탐구의 현장들을 둘러보고 공자상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새로운 문화에 충격을 받은 느낌이다. 

 

 

'대성문(大成門)'

 

'대성문'부터는 황금지붕에 붉은칠한 벽 들로 

서원 물과는 다르게 화려해 보인다.

 

 

'대성전(大聖殿)'

 

'대성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어서루'와 함께 꽤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공자를 모신 '대성전'이 나온다.

 

 

 

 '만세사표'(萬世師表)라는 큼지막한 글씨 아래는

 공자상을 안치하고 있다.

 

대성전을 통과해 계단을 올라가면 전면에 숭성사(崇聖寺)를 둔 채,

오른쪽에는 명륜당(明倫堂)이란 2층 건물이 자리 잡고,

그 맞은 편에는 현재는 귀빈실과 같은 사무실로 사용하는 문창각(文昌閣)이 있다

 

 

 

 

 

악록서원에서 나와 현 대학건물쪽으로 나와 보았다.

시간이 없어서 들어가 보진 못하고 서원에서 가까입구 풍경만 맛 보았다.

 

'후난대학'은 '악록서원'의 모태이다.

 청말인 1903년에 호남고등학당(湖南高等學堂)이란 이름으로 근대식 학교로 탈바꿈한 악록서원은

 호남고등사범학교를 거쳐 1926년에는 마침내 호남대학으로 명패를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악록서원이 지금은 후난대학의 부속기관으로 전략하고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배움이 짧아 무엇이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고대 중국학문과 철학이 살아숨쉬던 곳을

이렇게 둘러본 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수가 없었다. 

 


 

                                                                                                                    *도움말출처:다음검색,네이버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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