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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중국

남목청 6호, 대한민국임시정부 장사(창사) 활동구지와 골목시장~

by 신록둥이 2011. 5. 10.

 

 

 

     '대한민국임시정부 창사 활동구지와 거리시장'

 

     상강유람선 야경 감상 후 일정이 아직 남아서

     개복구 남목청 6호로 향한다.

 

     지금시각 오후 8시 30분,

     그곳에서도 안내 해주실 분이 우리의 예약으로 퇴근을 못하고 있단다. 

     서둘러 찾아가지만 우리 가이드 아자씨 오랜만에 오셨는지

     시장거리에서 10여분을 헤메고서야 찾아 들어 갔다.

 

 

'김구선생 흉상 앞에서 기념촬영'

 

항일전쟁시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활동을 하던 곳이다.

 

 

남목청 6호를 찾아가는 길에 거리풍경을 담아 보았다.

 

 

 

 

 

 

 

마작방도 들어가 한 장 담고~

이곳 저곳의 마작방에는 저렇게 앉아 마작을 즐기고 있었다.

 

 

 

 

 

 

미용삽인데 규모가 참 작았다.

 

 

구멍가게인데 진열대 안에 담배도 보인다.

우리의 70년대 풍경을 보는 듯하다. 

 

 

아이들 그림책 종류들~

 

 

 

 

 

 

 

 

 

별로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는 반찬가게와 꼬치 판매대~

 

 

 

 

 

 

'전화방'

 

이곳은 아직 개인전화가 없는 집이 많은지

공중전화는 아닌 것 같고.... 일반전화로 영업을 하고 있다.

 

이 곳이 500년이나 된 오래된 거리라 낙후된 장사(창사)의 뒷골목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0여분을 헤매다 표지판을 찾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장사 활동구지'

 

후난성 창사시 개복구 남목청 6호는 청조말기 정원식의 3층 건물이다.

건축면적이 470평 되는데 예전에는 하씨가문의 개인주택이었다.

 

남목청은 항일전쟁시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창사에서 정착할 때 조선혁명당의 본부이며

한국광복전선 3당통일회의를 개최한 장소이고

 김구선생이 창사에서 저격을 당해 부상을 입은 곳이기도 하다.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기다려 준 안내원'

 

1937년 7월, 중국에서 항일전쟁이 발발한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소재지인 송후지구는

 곧 전쟁터가 되었으며 같은해 김구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과 가족 100여명은

중국정부의 도움하에 난징에서 당시 후방인 이곳 창사로 이동하여 계속

자주독립적인 한국을 수립하기위해 불굴의 투쟁을 계속하였다.

 

 

 

 

그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의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시청하고 있다.

 

 

 

 

 

 

 

'한국교민들이 창사에서 '3.1운동' 19주년 기념 대회를 개최할 때의 단체사진'

 

 

 

 

'대한민국임시정부 이동 노선도'

 

상하이에서 1919년 4월 13일 3.1운동으로 확산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국내외 동포들의 구심적 역활을 수행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하여

충칭에서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환국할 때 까지 27년간 활동한 이동 경로이다.

 

 

 

 

 

'한국국민당 일부 구성원'

 

 

 

 

 

 

 

'조선혁명당과 한국독립당 일부 구성원'

 

 

 

'남목청 사건'

 

1938년 5월 6일 밤, 국무위원 김구와 군사위원 현익철,

유동렬, 이청천 등은 남목청 6호 조선혁명당 본부에 모여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3당 통일 문제를 의논하였다. 

 

조선혁명당의 불량분자 이운한은 갑자기 회의장에 들어와

 권총으로 사격해 김구, 현익철, 유동렬, 이청천은 총에 맞아 쓰러져 상아병원에 호송해 치료를 받았다.

이때 현익철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절명한다.

 

그당시 김구의 피격 소식을 듣고 장제스도 치료중인 상아병원으로

하루 3차례씩 위로 전문을 보내고 위로금도 전달했다고 한다.

 

 

 

 

'그당시 우리 요인들이 사용하던 생활 가구들'

 

 

 

 

 

 

 

'회정실 모습'

 

나라없이 타국을 떠돌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어려운 환경속에서 끊임없이 투쟁하신 김구선생을 비롯한 우리의 임시정부요인들 정말 자랑스럽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엌의 모습과 기구들'

 

 

 

'이청천의 침실'

 

중국풍이라 화려해 보이지만 이곳은 참 소박한 곳이었다.

 

 

 

'목재 세면기'

 

 

 

'남목청 내의 기념품 판매점'

 

밤 9시가 훨씬 넘었는데 퇴근을 안 하시네?...우리땜시 저러고 있었나?...

 

'2층에서 내려오며 담은 모습'

 

 

 

'김구선생 글씨'

김구선생의 독립을 바라는 강한 의지가 베어 있는 필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창사) 활동구지>

김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7년11월부터 1938년 7월까지 창사에 머무는 동안

독립운동을 진일보 추진하였으며

외세의 침략을 저항하고 민족의 독립을 챙취하는 역사였다며

한중양국 국민의 전통적인 우의를 선양하기 위하여 2007년 창사시 인민정부에서

남목청 6호를 시급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2009년에 특별 비용을 지불하여 청사를 복원하고 전시실을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도움말 참고:중국 후난성 창사 남목청 6호 안내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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