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원도

설악의 멋진 풍경을 안고 한계령휴게소을 넘다.

by 신록둥이 2012. 1. 14.

 

 

 

한계령 구비길을 넘어~

 

눈이 좀 내렸던 강원지방이라

설악의 멋진 풍경이 있는 한계령길를 못 넘을까봐서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길은 괜찮아

오색약수를 들려 약수도 한 모금 하고

한계령 구비 길을 넘었다.

 

 

 

44번 국도인 외설악인 설악로를 달리고 있다~

 

 

 

 

문헌상 가장 최초로 등장하는 한계령에 관한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의 “소등라령”이다.

 

소등라령을 국역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바드라재’로 번역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후기 문헌인 택리지, 대동여지도, 증보문헌비고 등에서는

전부 한계령을 ‘오색령’으로 부르고 있다.

 

 

 

현재와 같이 '한계령'으로 명명된 것은

1968년 공병부대가 한계령 도로공사를 인제쪽에서부터 시작하다 보니

인제군 한계리의 이름을 따 '한계령'이라 하였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고종 44년 당시 몽고군은 철원, 춘주(현 춘천), 인제를 거쳐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진격한 것으로 나와있다.

 

그러한 한계령이 조선 초기에는 험하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다.

1400년대에서 1500년대 사이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 양양도호부편에서는

한계령을 ‘부 서쪽 60리에 있으며 겹쳐지고 포개진 산맥에 지세가 험하고 궁벽지다.

예전에는 서울로 통하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라고 적고 있다.

 

 

 

사계절 아름다운 이 길은

특히 늦가을 쯤 지나다 보면 그 절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래로은 오색의 가을단풍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올라 갈 수록 풍경이 서서히 변하면서

급기야 정상에는

하얀 백설이 덮여 또 다른 겨울세계가 펼쳐지는....

 

 

 

 

 

1750년 씌여진 것으로 보이는 <택리지>에서 이중환은

백두대간 강원도 지역의 령 여섯 개 중 하나로 오색령(현 한계령)을 손꼽았으니,

험하다 해서 다니지 않았던 것은 조선 왕실과 양반 사대부일 뿐,

민초들은 1971년 현재의 한계령 포장도로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한계령 오솔길을 통해 백두대간을 넘나들었다.

 

 

 

치워진 눈이 가드레일을 완전 덮어버렸다.

 

 

 

처음 이길로 속초를 다니면서는

이 제를 넘고싶어 속초를 다닐 정도로

한계은 정말 아름다움을 가진 매력적인 길이었다.

 

 

 

 

현재의 한계령 도로는

1968년 1102 야전 공병단에서 착공하여 1971년 완공하였다.

한계령 도로의 완공을 기념하여

한계령 108계단 위에 있는 설악루라는 정자 옆에 공덕비를 만들었으며

“설악루”라는 현판은 김재규 당시 사단장이 직접 썼다고 한다.

 

 

 설악루는 한계령휴게소에서 오르는 계단길이 있는데

아주 오래전 아이들과 첨 올라 보고는

길이 험해 폐쇠된 적이 많아

그 후로는 올라보지 못했었다.

계절 좋을 때 가면 다시한번 올라 봐야겠다.

 

 

 

저 위 길로 올라야 하는데 체인도 없이 온 우리는

눈이라도 더 내렸다면 이 멋진 풍경을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점점 산 정상이 가까워 지고 있다는 느낌이....

 

예전에 이길을 오르면서는 몇 번을 갓길에 차를 세워야만 했었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우리의 설악산 풍경이 너무나 황홀해,

서서 감상하고 사진찍고....

금강산이 이와 비슷할까? 생각하며....

 

 

 

 

 

 

 

 

 

 

정상쪽으로는 또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겨울운치를 더한다.

 

 

 

 

 

'한계령(옛 오색령)정상'

 

 

오색령 유래

 

조선 영조때의 인문지리학자인 이종환의 저서 “택리지”에서는

백두대간 강원도 지역의 이름난 령 여섯 개를 손꼽았는데,

함경도와 강원도 경계의 “철령”

그 아래의 “추지령” 금강산의 “연수령” 설악산의 “오색령”(한계령)과

그 아래의 “대관령”, “백봉령”이 있었다고 했다.

그 중 으뜸으로 알려진 오색령(한계령)은

오색, 한계령, 점봉산을 이은 삼각형의 한 축이 되는 산마루 고개이며,

원래 이름은 오색령이었다.

 

 

 

 

 

 

 

한계령 정상, 기암괴석들과 잘 어우러지는 한계령 휴게소

 

한계령휴게소는

미국의 <타임>지에서

 ‘한국의 가장 경탄할 만한 훌륭한 건축가’라고 평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축물로 김수근 선생의 건축작품 중

자연과 가장 어우러진 건축물로 꼽힌다.

한국건축가협회 대상을 수상하였다.

 

*도움:한계령 휴게소의 도움말 표지판과 돌에 새겨진 글

 

 

 

많은 건축가들은 그당시 김수근 교수의

공간연구소에서 함께 일한 류춘수의 설계라고도 평한다.

 

류춘수씨는 상암월드컵경기장과 강촌휴게소의 설계로도 유명한 분이다.

 

 

 

우리는 요 한계령 휴게소를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 요 한계령약차에

옆 솥의 옥수수 두개랑... 

 

 

 

요 호떡도 3장 사서 휴게실로 들어갔다.

이런곳에 와서는 요런 작은 것들이라도 먹어줘야

사람사는 맛이 나지? 

 

 

와 ~저 고드름...

요 정상의 날씨는 저 아래와는 완전 다르다.

완전 살을 애는 칼바람~

 

그래서 한여름에 와도 이곳은 시원하다~ 

 

 

 

 

 

 

낙산사에서 점심 무료국수공양을 받고 올라왔지만

조금 부족한 듯 했던 점심을

우리는 요 주전부리들로 완전 해결했다.

 

 

이제 남설악을 내려가는 길~

 

 

 

'장수대'

이곳에서도 설악산 산행들을 많이 하신다.

 

 

 

남편과의 며칠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부부란 가끔 시간을 억지로라도 좀 만들어 대화의 시간도,

여유롭게 즐거운 시간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일에 지치고 세상사에 너무 찌들다 보면

원래의 본 모습인 순수한 감성도 메말라 사회생활에서도 서로 부딪치게 되고 

스스로의 삶에 회의감도 느끼게 되는데,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다 보면

많은 것이 용서가 되고 이해도 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내가 너무 거창하게 핑계를 됐나?....ㅎㅎ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