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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2013년 한국관광 100선 중 1위로 선정된 아름다운 길 '문경새재'

by 신록둥이 2014. 3. 17.

 

 

 

아름다운 길 '문경새재'

 

 

2013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 중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아름다운 길 '문경새재'

해발650m의 제3관문인 조령관까지 왕복 14km 길을

우린 사진을 담으며 놀멍쉬멍 걸어

남들보다 배의 시간이 걸렸었지만, 옛 선조들의 문화와 애환이 서린

새재길을 걸어 본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산세 아름다운 문경새재, 제2관문을 향하며...

 

걷기에 편안한 흙길이라 그런지

부모님 손잡고 나온 어린 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문경새재 탐방로 안내도(문경새재 홈페이지에서)

 

관리사무소 아래로 있던 주차장에서부터

제3관문 조령관까지의 거리가 아마 왕복 15km는 족히 될 것이다.

그런데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계곡을 끼고 오르던 새재의 산세도 참 아름다웠고, 도로폭 약 5m이상 되던

새재 신작로의 흙길이 걷기에 편안해서 그랬지 싶다.

 

신작로 옆으로는 사이사이 옛 새재 과거길도 있어

신작로 길이 심심하신 분들은 좁다란 옛길로 걸어봐도 좋겠다.

 

 

 

 

제3관문까지 다녀 내려올 때는 혹 힘들어

사극드라마 세트장 앞에서 또 전동차'를 이용하게 되지? 싶어

미리 옆 개울 건너 있던

생태공원길을 걸어 과거 길로 접어드는데....

 

 

 

젊은이들이 사과밭 광장에서 대형 줄넘기를 돌리며

흥겨운 야유회를 즐기고 있다.

 

ㅎ....가슴벅찬 청춘이다!!

 

 

 

'제1관문(주흘관)'

 

'주흘관(主屹關)- 영남제1관(嶺南第1關)'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으며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라고 한다.

정면 3칸(間)과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며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첫 관문인 이 주흘관이 있는 곳에서부터 새재의 산세들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조산(造山)'앞을 지나며....

 

조산은 말 그대로 인위적으로 조성한 산, 돌탑으로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공허하거나 취약한 지점에 조산을 만듦으로써

그곳을 보강하고자 하는 의식이 담겨있다.
문경에서는 골맥이 서낭당으로 불리며 마을 입구나 경계지점에

세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 곳이다.

 

제주지방, 기가 허한 곳에 쌓아둔 돌탑인 '방사탑'과 그 의미가 비슷하다.

 

 

 

 

맑고 투명한 개울물 위의 나무다리가

옛 정취를 물씬 풍긴다.

 

 

 

 

'조령원터(작은사진)'와 '등룡정'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등룡정은 현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에 있었던

사정射亭(활을 쏘는 곳)인데,

사진에서 나무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저 등룡정은 KBS

 '불멸의이순신' 촬영을 위해 재현한 세트장이다.

 

 

 

 

재현해 놓은 새재길 옛 '주막'

 

옛 형태대로 되살려 놓은 주막은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길로 오르던 선비들과 거부의 꿈을 안고

전국을 누비던 상인들 등 여러 계층의 우리 선조들이

험준한 새재길을 오르다 피로에 지친몸을 한 잔의 술로써 여독을 풀면서

서로의 정분을 나누며 쉬어 가던 곳....

 

 

 

 

'교귀정交龜亭'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계인수 하던 교인처交印處로

1470년경(성종 초)에 건립되어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896년 의명전쟁시

화재로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6월 복원한 것이다.

 

 

 

 

'용추계곡'

 

용추龍湫계곡의 풍광이 수려해

좋은 계절에는 또 쉬어가는 발걸음들이 더 즐겁겠다.

 

 

 

 

 

 

 

드라마 궁예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되었던 곳....

 

 

 

 

꾸구리?가

이래 좋은 곳에 살면서 지나는 샥시들을 희롱했다니??...

분명 저주 받은 왕자였을거야?...ㅋ

 

 

 

 

와~물빛 정말 좋다.

 

 

 

 

이런 길을 걷는 우리의 발걸음도 참 행복하다.

 

 

 

 

'조령 산불됴심 표석'


표석의 설치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원추형 화강암 자연석에

음각된 순수 한글비석이다.


현재 국내에 古語고어로 된 한글비석은

모두 4점이 있는데 모두 극한문 혼용으로, 이 '조령 산불됴심 표석'이

국내유일의 순수한글 비석이라 한다.

 

 

 

이곳은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응암(매바위)폭포'와 조곡폭포가 있어....

 

 

 

 

이곳에서 폭포를 향해 기념촬영을 하는 곳인데

겨울이라 흐르는 물이 없어 휑~

해서 울 남편은 계곡을 향해 인증 샷을 날려 본다.

 

 

 

 

제2관문 바로 직전의 새재주막~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있고....새재주막 풍경이 좋아

우리도 막걸리 한잔과 커피 한잔을 사서

가져 간 과일, 과자랑 먹으며 잠시 나그네처럼 쉬었다.

 

 

 

 

'제2관문(조곡관)'

 

'조곡관(鳥谷關)-영남제2관(嶺南第2關)'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中城) 이라고도 한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關)은 영성(嶺城 : 3관문)과 초곡성(草谷城 : 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鳥東門) 또는 주서문(主西門)을 설치하였다.


그후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하면서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鳥東門)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鳥谷關)이라 개칭하였다.

 

 

 

 

'바위굴'

 

저곳에 청춘남여가 들면 깊은 인연으로 해어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굴이다....ㅎ

 

 

 

 

'귀틀집'


주로 산악지대에서 사용하던 한국식 통나무집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우물정(井)자 모양이 되고 '방틀집' '목채집' 혹은

 '정한식(井韓式)집' 이라고도 한다.

 

건축방법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엇물리는

네 귀가 잘 맞도록 아귀를 지어, 나무사이에는 진흙을 발라

보온성이 좋고, 특히 자연소재 그대로 주거생활에 반영해 습기조절, 산림욕의

효과를 볼 수 있어 오늘날 옛 형식을 보완하여 현대인의

웰빙 주거 공간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경관도 수려하고 오르는 사이사이

볼 것도 많아 타박타박 오르는 7km로의 새재길이 지루할 새가 없다.

 

 

 

 

 

 

 

 

 

휴게소가 있는 '동화원'

 

 

 

 

장원급제길 '낙동강 발원지'

 

동화원을 지나 제3관문을 오르며 신작로로 가지않고

장원급제길로 올랐더니

낙동강 발원지라는 작은 연못도 있어 신기했다.

 

음~이곳이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의 발원지란 말이지??

태백의 황지연못만 있는줄 알았는데....

 

 

 

 

장원급제길과 '소원 성취탑'

 

백두대간이 이어지는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마패봉이 있고

동쪽으로는 부봉을 이루는 시루봉, 향로봉, 촛대봉, 신성봉이 어루러져 있어
이는 분명 가마솥의 시루떡과 정화수를 올려놓고

촛불을 밝히고 향 사르며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신선이 기원하는

조화로운 형국??이란다.

 

음~ 이길로 오르길 잘 했어!!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혜국사에 파천 할 때

쉬어간 이곳에서 기원하면

천기, 지기, 수기 등이 응집된 기를 받아 소원이 성취될뿐만 아니라,

신선이 하늘에 함께 기원해 주어 장원급제하여

마패차고 감투쓰는 벼슬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전설이 있는....요

소원 성취탑 앞에서 수많은 옛 선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자식들 벼슬길에 나갈 수 있게 시험 잘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나도 간절히 빌고 올랐다.

아들녀석 시험 잘 보면 가을에 요 길 다시 올라 신선께 감사하다!고

또 기도 올려야겠지?!...ㅎㅎ

 

 

 

 

 

더디어 오늘의 목적지,

약 7km 지점인 제3관문(해발650m)이 눈앞이다~

 

 

 

 

'제3관문(조령관)'

 

 

조령관(鳥嶺關)-영남제3관(嶺南第3關)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조령관은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 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陸築)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 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다.

 

 

 

 

 '조령약수鳥嶺藥水'

 

옆으로 있던 조령약수 물맛이 참 시원했다.

 

조선 숙종 34년(1708년) 조령성 구축시

새재정상(650m)에서 발견된 이 샘은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 길을 넘나들 때

갈증을 해소 시켜주는 역사 속의 名藥水로서 사철 솟아올라

옛날부터 이 물을 즐겨 마시면 長壽하는 백수령천百水靈泉이라고 한다.

 

 

 

 

선선을 모시는 신당?

 

약숫터 위로 있던 신당에는

양쪽에 두 동자와 호랑이를 거느린 신선도가 모셔져 있고

술과 안주, 향과 촛불이 켜져 있었는데

 새재신?을 모시는 것 같았다.

 

 

 

 

제3관문에서 내려다 본 풍경과

통제소가 있는 암행어사가든 쪽으로 가는 성벽 뒤쪽의 풍경....

 

앞으로 보이는 산이 백두대간의 부봉과 주흘산이지 싶다.

옆으로는 마패봉과 조령산이 있는데...느긋하게 새재 탐방로를 걷는다면

성벽 너머로 이어지는 암행어사 가든으로 더 걸으도 좋겠다.

 

 

 

 

다시 제1관문이 있는 주차장으로 하산하며....

 

잘 닦여진 흙길이라

평소 운동량이 많은 남편은 내려가는 길이 완전 수월했지만

난 다리 근육을 풀어 주느라

앉았다 일어섰다를 몇 번씩 반복하며 내려가야했다....ㅋ

 

 

 

 

'소원탑'

 

영남과 기호지방을 이어주는 새재는

조선시대 사람과 물자가 가장 많이 넘나들던 번잡하고 애환이 서린 길이다.
수많은 선비가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 길에 올랐고,

영남 북부의 세곡이 이 길을 통해 충주 가흥창으로 모였으며,

조선통신가사 걷던 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때는 넘기 힘들었을 이 새재길을 걸으며

무사안녕을 빌고 장원급제를 빌며 그 당시에도 이렇게 하나씩 주어들고 온

돌들로 탑을 쌓았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 아버지 따라 장에 가면서

골짜기 재를 넘을 때면 근처의 돌을 주워 돌탑위에 올리고

무사히 다녀오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며

 침도 세번 퉤퉤 뱉은 기억이 있다....침은 왜? 뱉었는지 모르겠지만...ㅎ


 

 

 

 

송림으로 우거져 있던 제2관문으로 하산하며...

요기 송림은 나중에 심은 듯....

 

 

 

'상처난 소나무'

 

저 앞의 소나무 아랫부분에는

작은 사진 속에서 보이는 것처럼 V자 모양의 상처가 있는데

이 상처들은 일제말기(1943년~1945)에

자원이 부족한 일몬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 에너지원인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자국으로...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저래 깊이 남은 많은 소나무들의

상처를 보는 내내 언짢았다.

 

 

 

 

남편에 비해 평소 운동량이 적어 살짝 힘들었던 나 때문에

드라마세트장 앞에서 우린 요 전동차로

내려왔는데, 예전에 함께 왔던 조카 말처럼 2천원의 행복이었다?....ㅎ

 

 

 

 

 

 

 

 

불우이웃에 희망을 전하기 위해 오늘도

쉬지않고 노래를 부르는

수와진 에 큰 박수를 보낸다.

 

 

 

 

남편과 친정인 김천으로 내려가면서 겸사겸사

제3관문까지 걸었던 문경새재 길....

 

녹음 짙은 푸름과... 만추의 고운 단풍이 없이도...

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 중 1위로 문경새재가 선정되었는지....
옷 다 벗어던진 황량한 겨울,

그 맨 속살로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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