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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퓰리처상 사진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9월 14일까지.....

by 신록둥이 2014. 7. 9.

 

 

 

'순간의 역사,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예술의 전당, 퓰리처상 사진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6월 24일~9월 14일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세 번째로 전시되고 있는

퓰리처상 사진 개막전에 다녀왔다.

일반인은 24일부터 관람할 수 있었는데, 전시 일을 잘 못 알고간 아들 덕분에

23일 개막전에 참석해 무료로 전시 작품들을 감상하고,

귀한 사진들도 카메라에 담아 올 수 있었다.

 

 

 

 

1972년 '베트남 소녀'를 찍어

1973년에 퓰리처상을 받은 '닉 우트(63세)'기자가 23일 개막전에 참석했다.

 

 

 

 

 

(도움,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퓰리처상은 저명한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의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1917년 만들어졌다.
언론.문학.음악 등 3개 분야에 걸쳐 시상하며,

90여 년에 걸쳐 명성을 쌓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보도사진부문 수상은 1942년 처음 시작되어,

1968년 특종사진, 특집사진분야로 나뉘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비까지 내리던 날이라

전시장이 좀 한가해 좋겠다 싶었는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막상 도착해보니

사진전은 다음날인 24일부터 일반에게 공개되는지라

좀 당황되었다.

 

 

 

 

6월 23일 개막전의 풍경~

 

그러나 비까지 오는데도 사진전을 보겠다고 찾아 온

우리가 기특했었는지

직원분께서 우리에게도 사진전 관람을 흔쾌히 허락해 줘

무료로 귀한 사진들을 감상하고, 이날은 사진촬영도 허락된 날이라

마음껏 사진도 담아왔다.

 

고마운 마음에 멋지게 포스팅을 해드려야 하는데

실력이 모자라?네....ㅎ

 

 

 

 

아들의 인증 샷~

 

사실은 아들 학교 숙제로 찾았었는데....요즘 어줍잖게 사진가 흉내를

내고 다니는 나로서도 정말 좋은 기회였다.

 

 

 

 

제1,2전시관은 세계를 바꾼 퓰리처상 사진들 234점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고,

제3전시관은 '맥스 데스토'의 '한국전쟁 사진전'도

열리고 있어 함께 돌아보면 좋겠다.

 

 

 

 

1942, '피켓라인' 사진가- 밀턴 브룩스

'곧 일이 터지겠군'... 이 작품부터 사진은 이어진다.

 

디트로이트의 포드자동차 공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농성 중인 노동자들과 시비가 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농성에 반대하는 사람이었죠. 돋 일이 터지겠구나 하는 감이 오더군요."

사진기자 밀턴 브룩스의 말이다

 

 

1951, '한국전쟁' 사진가-맥스 데스포

 

한국전쟁 당시 이 뒤틀어진 대동강 철교 폭파 사진으로

퓰리처를 거머줬던 '맥스 데스포',
그의 퓰리처 수상 팩키지에 포함되었던 작품을 중심으로

제3관에서 '한국전쟁 사진전'을 선보이고 있다.

 

 

 

 

1958, '신념과 신뢰' 사진가-윌리엄 C, 비얼

 

'순식간에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 위로 올라서야 한다는 경찰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꼬맹이의 표정이 너무 사랑스럽다.

 

 

우리나라 최초 퓰리처상은

2000년 탐사보도부문의 AP통신 소속 최상훈기자로 1950년 미군의

노근히 살해사건을 취재해서 상을 받았다.

 

 

 

또 2002년 이장욱 기자가 뉴욕탐임스 기자단 일원으로

'뉴욕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취재로 상을 받았고,

2011년 시카고 선타임즈의 김주호 기자가 시카고 총기사건 취재로 상을 받았다.

 

 

 

 

1972, '베트남-전쟁의 테러',

사진가-닉 우트

 

1973년에 저 작품으로 풀리처상을 탄 '닉 우트'씨가

'네이팜탄(알루미늄.비누.참유,휘발류 등을 섞어 젤리 모양으로 만든 유지 소아탄,

섭씨 3000도의 고열을내며 반경 30m 이내를 불바다로 만든다)' 폭격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던 42년 전

그 당시 상황을 자신의 작품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백발이 된 63세의 닉 우트,

AP통신 종군기자였던 형의 죽음으로 그 형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사진기술 덕분에 열 여섯 살 때

형의 후임으로 종군기자가 되었다 한다. 

 

 

 

 

 

이번 사진전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9.11테러 등

미공개 45점을 포함 234점을 전시되고 있다.

 

 

 

 

1982, '시카고에서의 삶' 사진가-존 H, 화이트

 

"숨 쉴 때마다, 도시의 모든 것을 느낀다."

 

지난 30년간 시카고에서만 촬영해 온 화이트,

"인생 곳곳에는 아름다운 시 같은 기억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순간을 다른이들과 함께 나누는 일 이것이 바로

제 사진의 큰 방향입니다."

 

 

 

 

사진가들은 순간을 잡고

그 순간의 사진들은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만든다.... 

 

 

 

 

1984, '굶어 죽어가는 아이' 사진가-앤서니 수오

 

'지금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기근과 전쟁이 에디오피아 전역을 휩쓸 당시

엄마 품안에서 굶어 죽어가던 아이의 절규......아직도 이런

현실은 계속되고 있다.

 

 

 

 

 

1994,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 사진가-케빈 카터

"안아주지 못해 너무나, 너무나 미안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진기자 케빈 카터,
동아프리카의 무자비한 기근을 취재하기 위해 수단으로 향했다.

 

3월 23일 그는 수단 아요드의 식량배급소에서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한 시간에 20명 꼴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굶주린 이들의 궹한 눈과 부풀어오른

배를 찍는 카터의 귀에 수풀속에서 가느라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굶주림에 지쳐 구호소로 갈 힘조차 잃은 소녀였다.

근처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있었다.

카터도 그 독수리도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터는 사진을 찍은 다음 새를 쫓아냈다.

그리고는 나무 아래에 앉아 엉엉 울었다.

 

그의 사진은 세계 주요 신문에 실렸다.

카터는 분노에 찬 편지와 한밤중에 화를 이기지못하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왜 그 아이를 돌보지 않았느냐"는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수단에서 취재 중인 기자들은

전염 위험 때문에 기근 희생자들을 만지지 못하게 되어 있다.

 

 

 

 

 

사진가, 케빈 카터

 

"아이를 안아주지 못해 너무나, 너무나 미안했다."

카터는 친구들에게 계속 말했다.

1994년 7월 20일,

케빈 카터는 자살했다. 그의 나이 서른세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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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사명을 띤 한 남자', 사진가-데이먼 윈터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은 궂은 날씨를 이유로

펜실베니아 주  체스터에서 열린 집회에 불참석했던 어느 날 밤,

민주당 후보 오바마의 열정은 빛을 발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오바마는 자리를 지켰다. 비가 그의 옷과 머리칼을 적셨지만,

오바마는 강인함과 결단력있는 모습으로 대중을 사로 잡았다.

이순간, 윈터의 카메라에 잡힌 오바마의 모습은 '사명을 띤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 후 그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미국대통령이 되었다.

 

 

 

 

 

 

 

 

 

'아름다운 빛만 눈에 들어왔다.'

 

 

 

 

우린 이렇게 감동의 퓰리처 사진전을 괌람하고....

제3관으로.....향했다.

 

 

 

 

제3관 , 퓰리처 수상작가 '맥스 데스포'의

'한국전쟁 사진전'

 

 

 뒤틀어진 대동강 철교 폭파 사진으로 퓰리처를 거머줬던 맥스 데스포,
6.25 당시 종군기자로 한국에 와

3년간 사선을 넘나들며 한국전쟁의 생생한 기록들을 남겼다.

 

 

 

 

손만 내민채 얼어버린 망자의 손.....

 

이번 작품들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긴박했던

4개월을 담은 36점의 사진들로

서울수복부터 흥남철수에 이르는 처절했던 전쟁의 기록들이다.

 

 

 

아직 끝나지않은 한국전쟁....

요즘 우리의 휴전선 근처가 불안하기만 하다.  

 

 

 

 

사진전을 보고 나오자

내리던 빗줄기는 그치고....흔적으로 바닥에 멋진 흔적을 남겨 놓았다.

 

 

 

 

 

1999, '코소보 탈출' 사진가 '캐롤 구지'

 

4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여성 사진가 '캐롤 구지'의 '코소보 탈출' 은

 절박함속에 묻어 있는 희망을 찾아낸 사진이다.
알바니아 쿠케스의 임시 캠프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샬라 가족이 상봉했다.
가족은 울타리 너머로 두살 난 '아킴 샬라'를 조부모의 손으로 건넸다.

 

 

순간을 담은 모든 사진들이 역사가 되고,

우리에게 감동과 아픔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한 작품들,

그 중 나에게 가장 큰 아픔으로 다가 온 사진은

'소녀부터 먼저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에

자살한 사진가 케빈 카터의 '독수리와 굶주림에 지친 소녀'의 사진으로

아프리카의 심각한 기아문제를 세계에 알리며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지만

자살로 삶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진가의 삶 앞에

내내 마음이 아팠다.

 

이날 함께 사진전을 관람했던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의 아내가 그의 시신이 담긴 관 앞에서

그와 늘 함께 눕던 매트리스를 깔고,

그 위에서 함께 듣던 음악을 들으며 잠들어 있던.... 사진이

그 어떤 사진보다 슬픔과 안타까움, 그리움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다.

요즘~ 아들이 나름 사랑에 빠져있어 그런가?..... ㅎ

 

직접적 자극인 소리음악보다 어쩌면 더 고차원적으로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이 시각적 언어인 사진예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여러모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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