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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왕손들의 뒷방이 되었던 창덕궁의 '낙선재'

by 신록둥이 2013. 11. 29.

 

 

 

창덕궁의 '낙선재(樂善齋)'

 

 

낙선재는 헌종(憲宗 1827∼1849, 24대)

효정왕후에게서 후사가 없자

1847년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으며

세자궁이었던 중희당 동쪽에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등

전각들을 지었는데 당시 이름은 낙선당이었다.

 

낙선재 일원은 경빈 김씨의 처소였던

석복헌(錫福軒)을 중앙에 두고

우측은 남편 헌종이 서재겸 사랑채로 사용했던 낙선재(樂善齋)가

좌측은 시할어머니 순원왕후(23대 순조비)가 거처하던

수강재(壽康齋) 전각이 나란히 붙어 있다.

 

당시 헌종은 대왕대비였던 순원왕후의 예우를 위해

수강재만은 단청을 입혔었는데 지금은 다 지워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승화루(承華樓)'

 

낙선재 일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 누각은 당시 세자의 동궁 '중희당'과

연결되어 있던 세자의 독서와 휴식공간이었던

'소주합루'였는데

헌종이 낙선재를 지으며 이름도 '승화루'로 바꿨다고 한다.

 

 

 

낙선재 후원의 '상량정'

 

청나라 건축양식이 엿보이는 저 정자도

원래는 '평원루' 였는데

일제강점기시절 일본인들에 의해 '상량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낙선재'

 

 

 

고풍스런 한옥 '낙선재'

헌종이 서재 겸 사랑채로 사용했던

어렴풋 보이는 낙선재 현판은 청나라의 대가 '섭지선'의 글씨며,

대청마루앞 주련들은 추사 김정희의 스승

'옹방강'의 글씨다.

 

 

 

 

 

 

 

 

 

 

단층 없는 양반가의 소박한 한옥 풍경과

창살이나 후원정자에서 풍기는 청나라 식 문양들이

평소 선진문물에 관심이 많았고

검소했던 헌종의 마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석복헌(錫福軒)'

 

헌종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경빈 김씨의 처소로

여염집 같은 소박한 석복헌 후원에는 한정당이 자리한다.

 

 

 

 

 

 

 

 

'수강재(壽康齋)'

 

  수강재는 수럼청정이 끝난 순조(조선23)비인

순원왕후를 모셨던 곳으로

순원왕후는 효명세자와 순조가 갑작스레 급서하자

당시 8세로 왕이된 헌종(조선24)대에 6년간,

또 철종(조선25)대에도 3년간 수렴청정을 하였었다.

  뒤뜰 후원으로는 '취운정'이 있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가을 풍경 속 낙선재 일원~

 

 

1926년 순종이 죽은 뒤

마지막 황후였던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여기서 살다 숨졌다.

또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들인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여사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고,

덕혜옹주 역시 1962년 낙선재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다

1989년 이곳에서 사망했다.

 

 

 

*2012년 신록둥이 포스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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