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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을향기로 가득했던 동궐 '창경궁'

by 신록둥이 2013. 12. 9.

 

 

동궐 '창경궁'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1418년에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 마련한 궁)에 창건한 궁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었던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재건하였으나 이괄의 난과 순조30년(1830) 대화재로

내전이 소실되어 중건하였고,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창경궁 함인정 앞의 수령 300~400년 된 '주목나무'

 

임진왜란 때도 그 후 화재로 이곳 내전전각들은

다 불타 새로 중건했는데,

그 광경을 이 나무는 다 보았겠구나?!....

 

 

 

우리는 창덕궁과 연결된 함양문으로 들어와

가을 단풍으로 아름답던 춘당지를 돌아보고 다시 내전 전각들이 있는

함인정 잎의 빈양문으로 해서 명전전, 명정문, 홍화문으로 나왔었다.

춘당지 사진은 미리 올렸고, 오늘은 내전과 정전의 사진들이다. 

 

 

 

 

창덕궁과 연걸된 함양문을 들어서면

아래로 창경궁 내전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용마루가 없는 '통명전'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공간으로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화재로 소실된 것을 순조34년에 중건한 것이다.

 

 

 

통명전 지붕의 잡상들~

 

궁궐 전각의 이런 추녀마루에 올려져 있는

다양한 형상의 흙으로 된 이런 조각물를 어처구니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국가 문서에서는 잡상(雜像)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장식적인 기능은 물론 궁궐 지붕 경사진 추녀마루의

기와(여긴 기와가 아니네??)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고, 궁전의 나쁜

기운을 물리치며 건축물을 수호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장치로 여겨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유래는 중국 당 태종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 기와를 던지며 괴롭히는 귀신을 쫓기 위해

문·무관 형상을 만들어 지붕 위에 올린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장인들이 궁궐 공사의 마무리로 어처구니를 올리는데,

 이걸 실수로 잊어 버리면 그게 바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나?....

 

 

 

 

 

 

 

 

 

 

 

 

 

춘당지에서 광덕문 향하는 길~

 

이때만 해도 늦은 가을이라고 여겼었는데

아름답기만하고 벌써 그립구먼~

 

 

 

 

 

 

 

 

 

 

 

창경궁 내전쪽~

 

 

 

양화당과 통명전(왕과 왕비의 침전) 

 

양화당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던 인조가 환궁하면서 이곳에 거처한 일이 있으며,

고종 15(1878) 철종비 철인왕후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전면 중앙의 2칸에만 툇마루를 창 없이 개방하였다..

 

 

 

 

집복헌?의 풍경~

 

어연례 행사를 위해...리허설을 마치고 막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있는 출연자들....

한발 늦었네?...이곳으로 바로 왔으면 만나겠는데....

 

 

 

 

 

 

 

좌측의 '경춘전'과 '환경전'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이며...

 

'환경전'은 창경궁의 한 내전으로 왕이 늘 거쳐하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효명세자'가 승하했을때는

빈궁殯宮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효명세자'는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맏아들로

순조의 수렴청정도 했던 총명하고 영특했던 인물이였으나

22세의 어린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왕세자이다.

창덕궁 후원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함인정'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예전 창경원이었던 시절...동물원 권역으로

식물원이었던 춘당지쪽과 함께 지금은 넓은 녹지공간을 형성하며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 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화려했던 늦가을날의 창경궁 정원 풍경~

 

 

 

 

내전과 외전을 연결하는 '빈양문' 앞에서

또 한쌍의 예비부부가 웨딩촬영을 하고 있다.

 

 

 

고궁 풍경 속에는

역시 이런 한복의 연인들이 잘 어울린다.

 

 

 

 

'명정전(국보제226)'

 

창경궁의 정전으로

조선 제9대 성종 14(1483)년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8(1616)에 중건한 것이다.

조선새대의 궁중 전각이 대부분 남향인데 비해

오직 이 명정전만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는것이 특징이며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나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 이용하였다.

 

월대의 전면에는 명정전 어간에 맞추어 중앙에 삼도의

이중계단이 놓였다.

 

 

 

 

하층 계단 앞에는 명정문과 연결되는 어도가 있고

좌우에 24개의 품계석(品階石)이 있다.

 

 

 

 

일반문인 선인문을 통해 정원으로....

 

 

 

 

이날은 창덕궁 후원을 아쉽게 들어가보지 못하면서

대신 이 창경궁과 춘당지쪽을 돌아보며

점점 멀어저만 가던 가을 풍경을 만끽했던 하루였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으로 명정전과 마찬가지로 동향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광해군 8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한때는 동물들이 이 고궁의 주인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도심 속 휴식 문화공간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역사적 현장이다.

 

 

 

 

가을향기 가득했던 날 창경궁 정원....

 

 

 

*도움말:창경궁 홈페이지

*창경궁 바로가기:http://cgg.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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