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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역사 탐방지, '지심도'

by 신록둥이 2013. 3. 28.

 

 

 

 

역사의 흔적을 품고 사는 '지심도'(2편)

 

 

아름드리 동백나무들이 빽빽하게 터널을 이루는 지심도는

한여름에도 시원해 동백숲길을 걸으려

많이 이들이 찾는 힐링섬이다.

 

그러나 막상 섬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1937년 일본 해군들이 지심도를 기지화 하면서

 곳곳에 만들어 놓은 그 당시 흔적들를 고스란히 안고 사는

                                                                        지심도의 아픔이.... 전해진다.

 

 

 

 

지심도 '포진지'

 

새벽에 내린 빗줄기에 후두둑 떨어진 동백꽃잎들이

아픈 역사의 흔적인 포진지의 풍경을 로멘틱하게 만들어 놓았다.

 

 

 

 

 

지심도 장승포 여객선 터미널~

예약은 되지않고 현장발권만 가능하다.

전화:055-681-6565

 

 

 

 

 

멸치잡이 배들인지 수평선을 잇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잡은 멸치를 찌는 선박들도 두어 척 보였다.

떨어지는 고물이라도 집어삼키려는 듯

 바닷 갈매기떼들도 몰려 있었고.... 

 

 

 

 

 

 

 

 

 

해약 절벽으로 둘러쌓인 지심도~

 

구 일본군들이 기지화 하면서 만들어 놓은 흔적들이 가득한 곳,

포진지와 탄약고, 서치라이트보관소, 대포를 쏘기 위한 방향지시석, 게양대,

망루, 그리고 1938년에 지어진 전등소 소장이 사용했다는 일본식 가옥,

활주로?, 발전소, 발전소는 민박집으로 개조하면서 그 내부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직접 보진 못했지만 방공호도 3곳 남아있다고 한다....

 

 

 

 

고운 빛깔의 아름다운 동백꽃무리~

꽃송이도 큼직하고 얼마나 탐스럽던지....

 

 

 

 

'마끝'

해안절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절경인곳.....

 

 

 

 

 

 

 

 

 

 

 

3월초의 풍경이라

동백꽃들이 만개하진 않았었지만

살면서 동백꽃은 이곳에서 가장 많이 본 것 같다. 

 

 

 

 

남편과 둘이 왔다면 우린 또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저 멍게와 해삼을 한 접시씩 해치웠을 것이다.

그러나 일행들과 먼저 섬을 일주한 남편은

나중에 선착장 가기 전에서야 겨우 코빼기를 보았었다....ㅜㅜ

 

 

 

 

 

 

 

 

 

'포진지와 탄약고'

 

탄약고는 1935년 11월 30일~1938년 1월 27일 사이

지심도 포대를 건설할 때 함께 건설되었다.
내부는 전등을 설치하였고, 탄약과 포탄을 저장하던 곳이라

 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며 지하 벙커식으로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탄약고 안에는 45식 15밀리 캐논포 탄환, 38식 기관총 탄환 등 각종 화약을 보관하고 있었다.

 

 

 

 

전시실로 꾸며놓은 '탄약고 내부'

 

 

 

 탄약고의 외부 좌우에 환기구 역할을 하는 구멍이 2곳이 있으며,

 내부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항아리 모양의 수로를 설치했다.

 이러한 방식은 4곳의 탄약고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당초 탄약고는 포대와 가까운 거리에 설치되어

 포탄이나 탄약을 운반하는데 편리하도록 건설되었고, 4곳 모두

 정문을 부산쪽 방향이며, 후문은 쓰시마 방향이다.

또한 탄약고는 비탈진 곳에 은폐되어 있어 눈에 쉽게 발견할 수는 없다.

 

 

 

 

 

 

탄약고와 포진지 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동백꽃송이들~

 

 

 

 

 

 

 

 

 

 

 

'활주로'

 

따뜻한 햇빛을 받아

새순이 살포시 올라 온 쑥들을 뜯는 손길들~

 

 

 

 

활주로 전망대~

 

 

 

 

 

 

 

 

 

 

동백터널 해안선전망대 가는 길~

 

 

 

 

동백터널~

 

아래로 내려갈수록

혼자걷기에는 으시시 할 정도로 동백숲이 우거져 있었다. 

 

 

 

해안전망대 가는 길~

 

 

 

 

'서치라이트(searchlight) 보관소'

 

이 탐조등(searchlight) 보관소는 1938년 1월 27일 구 일본군에 의해 완공됐다.
이 전등을 원거리의 물체들을 탐색하거나 비추는 용도

또는 표지등의 용도로 쓰였다.


당시 일본군이 사용한 탐조등은 직경 2m 정도로 도달거리 약 7~9km까지 이르렀다.
탐조등은 장승포, 일운면 지세포, 진해만 ,쓰시마 쪽 방향에 설치하여

지심도로 접근하는 선박이나 사람들을 감시하고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해안선 전망대'

 

 

 

 

 

해안선 전망대에서 보이는 '해식절벽(해식애)'

 

지심도의 해안가를 보면 파도,

 조류 등의 침식으로 깎여 형성된 절벽을 볼 수 있는데,

산지가 해안까지 연결된 암석해안에서

주로 볼 수 있으며 암석의 연약한 부분을 따라서 해식동굴을 만들기도 하며

 오랜기간 동안 파도의 영향으로

해식동굴이 무너져 절벽이 후퇴하기도 한다.

 

 

 

 

'게양대'

 

1938년 1월 27일 지심도의 포대가 준공되자

구 일본군의 포대진지임을 알리기 위하여 교쿠지쯔키를 게양했던 곳이다.
교쿠지쯔키는 일본의 국기인 히노마루(일장기)의

태양 문양 주위에 퍼져나가는 햇살을 붉은 색으로 도안한 깃발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0년 구 일본육군국기로써,

1889년 해군군함기로 사용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육해군이 함께 해체되면서 사라졌다가,1954년 이후부터 일본 자위대의 군대 깃발로 사용하고 있다.
이 깃발은 일본의 대륙침략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게양대 위치는 당시 양지암 통신대, 부산 영도 포대,

쓰시마 등지를 볼 수 있는 곳에 설치했다.

 현 위치에서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에 망루를 따로 설치하여

주변 경계를 서기도 했다.

 현재 게양대에는 태극기를 게양한다고 한다.

 

 

 

 

 

'망루'

 

검푸른 남해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조망되는 이 망루도

그 당시 우리 땅을 점령했던 일본 주둔군들이

주변경계를 서던 곳이었다 생각하니 한편 가슴이 답답해지고 먹먹해진다.

 

 

 

 

 

 

 

 

'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

 

이 전등소 소장의 사택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지금은 카페로 사용되고 있었다.

 

 지심도 전등소는 지심도 포대의 완공과 함께 1938년 1월 27일 준공됐고,

전등소에는 발전소와 소장 사택, 막사 등의 부속건물로 구성되었다.

 
전등소에는 탐조등 등을 갖추고 있었는데,

 지심도의 기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고, 탐조등은

야간에 적 함선을 탐지하기 위하여 설치했다.

당시 탐조등은 직경 2m 정도였으며 조명의 도달거리는 약 7~9km 정도였다 한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던 3월 초, 지심도 선착장 풍경~

이곳에서는 그렇게 심하게 불던 바닷바람도

섬의 속살로 들어가면 한없이 따스한 햇살이 비추기도 했다.

아름다운 동백꽃망울을 틔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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