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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경궁>도심 속 고궁 산책~

by 신록둥이 2011. 10. 10.

 

 

<창경원, 그 아픈 기억....>

 

지난 4월 

새싹들이 연두빛으로 물들고 

철쭉이 빨갛게 몽우리 지던 어느 봄 날,

친구랑 춘당지로 봄나들이 왔던 생각이 난다.

 

그 때는 둘이서 

이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도

명정전도 둘러 보질 못하고 창덕궁에서 함양문을 거쳐

창경궁 대온실과 춘당지쪽 산책로만 거닐다 갔었다.

 

 

그 보다 더 오랜 옛날....

동물들이 지금의 서울 대공원으로 옮기기 전.... 벚꽃들이 흩날리며

많은 사람들로 엄청 시끄럽던

어느 봄날에.... 

외할아버지와 부모님과 손잡고 와 본 기억이

또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곳이 창경원[昌慶苑]으로 불리며

동.식물원이었던 그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날에.... 

 

 

'창경궁'을 견학하고 나 온 유치원생들~

 

 

'창경궁[昌慶宮 ] 정문인 홍화문'

 

조선 성종 15년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광해군 8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창경궁 미리보기'

 

 

외행각쪽 광덕문, 나오면서 안쪽에서 담은 모습~

 

홍화문을 들어서면 옥천교 건너기 전, 좌우로 문이 나 있는데

이 광덕문은 북쪽으로 나 있는 외행각에 있는 문으로 

뒤의 전각들로 바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이다.

산책로인 금천길로 해서

대온실과 춘당지로도 바로 갈 수 있다.

 

 

'옥천교와 명정문'

 

옥천교(보물386호)는

1483년 명당수가 흐르는 어구 위에 설치한 다리이며,

명정문은 중문의 기능을 하는 평삼문으로

  명정전과 함께 광해군 때 재건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명정전'

 

1484년(성종 15) 당시 생존하였던 세 왕후(세조·덕종·예종)의

거처를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지은 것이다.

이때 지은 집이 명정전·문정전·수녕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과

양화당·여휘당 및 사성각 등이다.

 

전각의 이름은 서거정(徐居正)이,

정전(正殿)인 명정전의 상량문은 김종직(金宗直)이 지었다.

 

 

'명정전과 좌우 24개의 품계석'

 

이곳은 임금님이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국가적인 행사가 거행되었던 곳으로

1544년 인종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이다.

이는 창경궁의 지세에 따른 것으로 그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렇게 문화재를 관람하면서

해설사로 부터 자세히 설명을 들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중의 월대 전면 답도에는

날개를 활짝 편 한 쌍의 봉황을 새겼다.

 

 

'용상과 일월도의 병풍'

 

저 병풍 일월도의 해와 달은 음양의 조화를 나타낸 것이고

우리 국토인 전도를 다 담고 있으며

 왕들이 유일하게 걷는 공간은 이 정전 실내라

많은 왕들이 운동부족으로 병에 시달리다 일찍 승하했다고....

해설사의 설명을 귀동냥으로 들었다.

 

 

 

용상 위로는 닫집으로 짜은 보개(寶蓋)가 있고

 천정의 중앙부에는

한층을 접어올린 쌍봉문(雙鳳紋)이 있는 보개천정을 장식했으며,

그 주위는 우물반자를 하였다.

단청은 모로단청을 하고,

특히 천정판에는 화려한 연화문의 반자초 단청(丹靑)을 시문했다.

 

 

 

'문정전'

 

문정전은 창경궁 창건 때 편전으로 건립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명정전과 함께 중건하였다.

1930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朝鮮古蹟圖譜」에 실린 명정전 정면 사진에

동측면의 일부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 이 전각이 존속했던 것으로 알 수 있으나,

그후의 자세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문정문으로 나오면

산책할 수 있는 넓은 녹지가 있는 곳, 푸른 노송들과 관천대가 있다.

 

 

 

 

'관천대'

 

이 관천대는 소간의(小簡儀)를 설치하여 천문을 관측하던 곳으로,

「書雲觀志」에 보면 숙종 14년(1688)에 조성된 것이다.

원래 창덕궁 금마문 밖에 있던 것을 일제 때 창경궁으로 옮겨 왔다.



 

 

문정문을 나오면서 만났던 두 숙녀분인데,

사진을 몇 장 담는 사이

벌써 이 관천대를 지나 

환경전 쪽으로 산책을 즐기며 걷고 있다. 

 

 

오전 시간대를 이용해 다니다 보면

이렇게 견학 다니는 귀여운 꼬맹이 유치원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저 어린 애들이 뭘 얼마나 느끼겠나? 싶다가도

어릴 때 부터 우리 문화를 접하다 보면

그래도 차차 온 몸으로 받아드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목과 함인정'

 

함인정은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환경전'

 

이곳은 창경궁의 한 내전으로 왕이 늘 거동하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가 승하했을 때는 빈궁(殯宮)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경춘전'

 

이 전각은 창경궁의 내전으로 성종 14년에 건립되었다.

그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에 재건하였으나, 순조 30년에 불탄 것을 그 3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이며,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통명전'

 

명정전 서북쪽에 있으며,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이다.

창경궁 창건 때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이 되고,

다시 이괄의 난과 정조 때 화재를 입었다.

지붕 위에는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고, 전후퇴칸을 두었다.

'양화당'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던

인조가 환궁하면서 이곳에 거처한 일이 있으며,

고종 15년(1878) 철종비 철인왕후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영춘헌과 집복헌'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集福軒)은 영춘헌의 서행각으로 초창 연대는 알 수 없다.

집복헌에서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가 태어났고

정조 14년(1790) 6월에는 순조가 태어났으며

정조는 영춘헌에서 거처하다가 재위 24년(1800) 6월 승하하였다.

순조 30년(1830) 8월 1일 오전 화재가 발생하여 환경전, 경춘전등과 함께 소실되어

순조 34년 장남궁을 헐어다 그 재목으로 재건하였다.

 

 

 

 

 

 

'풍기대와 양부일구(해시계)'

.

'대 춘당지'

 

위에는 원래의 춘당지였던 소 춘당지가 있다.

대 춘당지는 1909년에 대농포에 속한 11개의 논을

하나의 연못으로 만든 것이다.

 

대농포는 임금과 왕비가 각기 농사와 양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궁궐 안에 둔 논과 뽕밭이다.

이 대춘당지의 섬은 1984년에 만들었다.

 

 

 

친구와 봄꽃 흩날릴 때

이곳을 거닐었었는데 벌써 나뭇잎이 떨어지고

 낼 모래면 단풍도 들 것 같다.

 

 

 

 

'금천길'

숲과 물이 흐르는 산책길....

 

친구랑 대온실과 춘당지 쪽은 한 바퀴 돌다 갔었는데

이곳 금천길은 걷지 못해서 오늘은 이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요 금천길의 우거진 숲은

여름도 가을도

도심 속 멋진 휴식처로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입장료도 천원이다.

근처 계신다면 점심시간을 이용, 커피값 천원 절약해서

이 멋진 고궁을 산책로 삼아 

관천대 쪽으로 해서 춘당지를 한 바퀴 돌아 나오면

건강도 챙기고 문화재 보전에도 일조를 하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도움말:네이버검색

*창경궁 바로가기: http://cgg.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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